공유기 스펙표는 1Gbps인데 칩셋은 100Mbps였다
10년 넘게 쓴 공유기를 바꾸려고 후보를 추리는 중이었다.
지금 물려 있는 건 ASUS RT-AC68U다. T-모바일 번들로 풀린 물건을 직구로 두 대 샀다. 당시 정가로는 20만 원대였던 중상급기를 번들 가격에 집은 거라, 체급 대비로는 아주 싸게 산 편이었다. 그게 10년을 버텼다.
산 시점이 기억에서 계속 흔들렸다. 처음엔 2014년에서 2016년 사이로 잡았는데, 쓰다 보니 신혼집에서도 쓴 것 같아서 2010년까지 당겨봤다. 확인해보니 그건 불가능했다. RT-AC68U 출시일이 2013년 10월 9일이고, T-모바일이 이걸 TM-AC1900으로 리브랜딩해 내놓은 건 2014년 말이다. 아무리 빨라도 2014년 말이고 실제로는 2015년 전후일 것이다. 2010년에 신혼집에서 쓰던 건 그 앞의 애니게이트 RG5500N이었다.
이 글은 결국 그 얘기다. 기억도 틀리고 상품 페이지도 틀린다.
같은 체급을 지금 다시 맞추려면 국내 시장에서는 ipTIME AX3000SE나, 한 칸 위로 BE6500으로 가야 한다. 두 모델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다가, 기왕 하는 김에 그 전에 쓰던 기기까지 같이 표에 넣어봤다. 내가 거쳐온 공유기가 어떤 순서로 빨라졌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숫자가 안 맞았다.

상품 페이지와 칩셋이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RT-AC68U 전에 쓰던 건 애니게이트 RG5500N이다. 처음엔 RG3000A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제품 사진을 찾아보니 디자인이 RG5500N이었다. 그 앞에는 RG1000이 있었다. 국내에 IP 공유기 만드는 신생 업체가 몇 군데 생기던 시절에 산 물건이고, 그중 하나가 지금의 ipTIME이다.
RG5500N 스펙을 확인하려고 다나와 상품 페이지를 열었다. 이렇게 적혀 있었다.
최고 유선 속도 1Gbps · WAN 1포트(1Gbps) · LAN 4포트(1Gbps) · 최고 무선 속도 300Mbps · CPU Realtek RTL8196C 384MHz · RAM 16MB · FLASH 2MB
RAM 16MB에 Flash 2MB인 건 시대를 생각하면 이상할 게 없다. 눈에 걸린 건 유선 1Gbps 쪽이었다. 저 조합이 좀 어색했다. CPU가 384MHz인 기기에 기가비트 스위치가 네 포트 붙어 있다는 게 그림이 잘 안 그려졌다.
그래서 칩셋을 직접 찾아봤다. RTL8196C는 802.11n AP/라우터용 네트워크 프로세서이고, 내장 스위치는 5포트 10/100Mbps다. 데이터시트 요약이 명시하고 있다 — IEEE 802.3 10Base-T와 100Base-TX용 PHY와 트랜시버 다섯 개. 기가비트가 아니다.
물론 SoC 내장 스위치를 안 쓰고 외장 기가비트 스위치 칩을 따로 얹는 설계도 있다. 하지만 RAM 16MB·Flash 2MB에 CPU 384MHz인 보급형 11n 기기에 그런 원가를 얹었을 가능성은 낮다. 무엇보다 그 CPU로는 기가비트 라우팅 스루풋이 안 나온다. 포트가 기가비트여도 실제로 흐르는 속도는 100Mbps대에 머문다.
즉 상품 페이지의 저 숫자는, 잘해야 의미 없는 표기이고 아마도 그냥 틀린 값이다.
이건 애니게이트를 탓할 일은 아니다. 가격비교 사이트의 스펙 DB는 제조사 제출 자료와 편집자 입력이 섞여 쌓이고, 15년쯤 지난 단종 제품의 항목을 아무도 다시 안 본다. 내가 짚고 싶은 건 다른 쪽이다. 나는 방금 내 손으로 15년 쓴 장비의 스펙을 확인하려다가, 첫 번째 출처에서 틀린 값을 받았다. 칩셋을 따로 안 찾아봤으면 그대로 믿었을 거다.
실제로 나는 그대로 믿었었다. 표를 만들어 놓고 "유선은 16년째 그대로군" 하고 결론까지 냈다가, 칩셋을 확인하고 나서 그 문장을 지웠다.
스펙표를 걷어내고 다시 세운 표
칩셋 기준으로 다시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2010년경 RG5500N 은 무선이 300Mbps 11n 싱글밴드에 유선이 10/100Mbps 였다. CPU 는 RTL8196C 384MHz, RAM 과 Flash 가 16MB 와 2MB 다. 2013년 RT-AC68U 는 무선 1900Mbps 급 11ac 듀얼밴드에 유선이 1GbE, 듀얼코어 800MHz 급에 256MB / 128MB 다.
현행으로 넘어오면 AX3000SE 가 무선 2.4Gbps Wi-Fi 6 듀얼밴드인데 유선은 여전히 1GbE 다. MT7981 듀얼코어 1.3GHz 에 256MB / 128MB 다. BE6500 은 Wi-Fi 7 트라이밴드로 6GHz 를 포함하고 유선이 2.5GbE 인데, CPU 와 메모리는 공개 수치를 못 찾았다.
무선은 300Mbps에서 2.4Gbps로 여덟 배가 됐다. RAM은 16배, Flash는 64배다.
유선은 2013년에 기가비트로 올라간 뒤로 13년째 같은 자리다. 지금 새로 사는 보급형 Wi-Fi 6 공유기의 랜 포트가, 12년 전에 산 내 RT-AC68U와 정확히 같은 속도다. 그리고 2.5GbE로 넘어가려면 BE6500처럼 한 체급 위로 올라가야 한다.
RG5500N을 잘못된 스펙대로 1Gbps로 두면 "16년째 정체"라는 더 자극적인 문장이 나온다. 실제로 나는 그 문장을 먼저 썼다.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고, 유선은 2010년대 초에 한 번 올라갔고 그 뒤로 안 움직였다. 덜 극적이지만 이쪽이 맞다.
무선만 팔리기 때문이다
유선이 안 움직인 이유는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다. 2.5GBASE-T 표준은 2016년에 나왔다. 10년 전이다.
무선은 규격이 바뀔 때마다 이름이 새로 붙는다. 11n, 11ac, Wi-Fi 6, Wi-Fi 6E, Wi-Fi 7. 이름이 바뀌면 박스가 바뀌고 박스가 바뀌면 팔린다. 숫자도 크게 적을 수 있다. 2.4Gbps, 6500Mbps 같은 값은 실제로 그 속도가 나온다는 뜻이 아니라 링크 레이트를 다 더한 마케팅 수치인데, 어쨌든 크다.
유선은 그럴 게 없다. RJ-45 커넥터는 20년째 똑같이 생겼고, 랜선도 그대로 꽂힌다. 포트를 2.5GbE로 올리면 PHY 원가가 올라가고 발열이 늘고 전원부를 손봐야 하는데, 박스에는 여전히 "랜 4포트"라고 적힌다. 소비자가 차이를 못 느낀다.
그래서 제조사는 무선 규격을 올리는 데 예산을 쓰고 유선은 놔둔다. 실제로 집에서 병목이 생기는 자리는 정반대인데도 그렇다. 무선은 어차피 벽 하나만 지나도 표기 속도의 몇 분의 일로 떨어진다. 반면 NAS에 파일을 밀어넣거나 PC 두 대를 유선으로 물려 쓸 때는 1Gbps가 그대로 천장이 된다.
그래서 뭘 살 것인가
내 결론은 BE6500이다. 이유는 Wi-Fi 7이 아니다.
Wi-Fi 7이나 6GHz는 클라이언트가 받쳐줘야 의미가 있다. 집에 있는 기기 중 6GHz를 쓰는 게 몇 대나 되는지 세어보면 대개 한두 대다. 그 한두 대를 위해 값을 더 낼 이유는 약하다.
실질적인 차이는 유선이다. BE6500은 2.5GbE를 WAN 1 + LAN 3으로 낸다. AX3000SE는 전부 1GbE다.
여기서 갈리는 기준은 하나다. 한 번 사서 몇 년 쓸 사람인가.
나는 RT-AC68U를 10년 굴렸고 그 앞의 RG5500N도 비슷하게 썼다. 그러면 지금 사는 물건도 2030년대 중반까지 자리를 지킬 확률이 높다. 국내 ISP의 2.5G 상품은 이미 나와 있다. 남은 수명 동안 회선을 한 번도 안 올릴 거라고 보는 쪽이 더 이상한 가정이다. 그때 AX3000SE를 쓰고 있으면 공유기가 그대로 병목이 된다.
반대로 회선이 1Gbps이고 4~5년 뒤에 갈아탈 생각이면 AX3000SE가 훨씬 합리적이다. 가격 차가 크고, 일반 가정에서 성능은 남는다. Wi-Fi 6에 MT7981 듀얼코어 1.3GHz, RAM 256MB면 부족할 데가 없다.
BE6500을 살 거면 살 때 확인할 게 하나 있다. 검색하면 BE6500UA(USB 무선랜카드)와 BE6500PX-E(PCIe 카드)가 같이 나온다. 공유기가 아니다. 2.5GbE 4포트는 공유기 쪽 스펙이니 제품 페이지에서 포트 항목을 직접 확인하는 게 좋다. 앞에서 다나와 스펙이 칩셋과 안 맞았던 걸 생각하면 더 그렇다.
그리고 기존 RT-AC68U 두 대는 버릴 필요 없다. AP 모드로 유선에 물려서 사각지대 커버용으로 쓰면 된다. 메시는 브랜드를 타지만 AP는 안 탄다.
그런데 스펙보다 확인하기 어려운 게 있다
여기까지가 이번 주 초에 정리한 내용이다. 그리고 며칠 뒤에 이 뉴스가 나왔다.
미국 보안 기업 벌른체크(VulnCheck)가 중국 선전의 통신장비 업체 선전즈보퉁전자(Zbtlink)가 만든 무선 공유기 펌웨어 21종을 분석했더니, 전 제품에서 원격 관리 기능이 나왔다는 내용이다. 확인된 사실만 옮기면 이렇다.
대상은 Zbtlink 와 Wiflyer 브랜드로 팔린 20여 종이고 OEM 으로 상표만 바꿔 단 제품에도 포함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규모는 전 세계 최소 10만 대로 추정된다. 전원을 켜면 자동으로 작동하면서 약 35초마다 특정 IP 와 중국 도메인에 접속한다. 통신 상대를 확인하는 인증 절차가 아예 없고, 서버가 내려보낸 명령을 루트 권한으로 실행한다. 벌른체크는 이걸 "Endless Doors", 무한의 문이라고 이름 붙였다.
벌른체크는 이걸 일반적인 소프트웨어 결함이 아니라 제조 단계에서 의도적으로 넣은 기능으로 판단했다. 펌웨어를 갈아끼워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기기 자체의 신뢰성 문제라며, 해당 공유기를 네트워크에서 분리하고 침해 흔적을 점검하라고 권고했다.
제조사는 조사 결과가 공개된 뒤 해당 제품 판매를 중단하고 펌웨어를 홈페이지에서 삭제했다. 문제의 기능은 고객 요청과 승인을 받아 장애 대응과 설정을 지원하기 위한 애프터서비스용이었다고 해명했고, 불법 접근에 쓰인 적은 없으며 문제를 해소한 펌웨어 업데이트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실제 공격에 악용됐다거나 중국 정부가 개입했다는 증거는 공개되지 않았다.
해명이 사실이라 해도 남는 건 그대로다. 인증 없이 명령을 받아 루트로 실행하는 통로는, 그 통로를 만든 사람의 의도와 무관하게 그 통로를 먼저 장악한 사람의 것이 된다.
나는 이미 한 번 겪었다
이 뉴스를 보고 오래된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10년쯤 전에 어떤 접속 장애를 확인한 적이 있다. 로그인 페이지까지는 뜨는데 로그인 직전 단계에서 진행이 안 되는 증상이었다. 서버 쪽에는 에러가 안 남았고 재현도 안 됐다. 특정 환경에서만 났다.
원인은 공유기였다. 코시 BR834를 물린 환경에서 브라우저의 User-Agent 값이 바뀌어 나가고 있었다.
그러면 왜 로그인 직전에 걸리느냐 — 그 시절 국내 서비스의 로그인 전 암호화 모듈은 서버가 User-Agent를 보고 분기하는 구조가 흔했다. 브라우저 종류와 버전을 보고 내려줄 스크립트나 모듈 경로를 고른다. 그 값이 갈려 있으면 서버 입장에선 알 수 없는 브라우저가 되고, 분기가 빈 값으로 떨어지면서 사용자에게는 "접속이 안 된다"로 보인다. 네트워크는 멀쩡했다. 요청은 갔고, 서버가 응답을 못 준 게 아니라 줄 게 없었다.
유통사에 문의했다. 그쪽도 모르고 있었다. 확인하고 나서 수정된 펌웨어를 만들어서 보내줬다.
당시엔 그냥 처리하고 넘어갔는데, 지금 다시 보면 이 대목이 제일 중요하다. 유통사는 자기가 파는 기기의 펌웨어가 지나가는 트래픽을 손대고 있다는 걸 몰랐다. 박스에 상표를 붙여 팔고 있었을 뿐이다. 신고가 없었으면 안 고쳐졌다. 그리고 그 수정본은 문의한 쪽에만 갔다. 같은 기기를 쓰던 다른 사람들은 계속 그 상태로 썼다.
이번 Zbtlink 건에서 "OEM으로 상표를 붙여 판 제품에도 같은 기능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제기된 걸 보면, 그 상표를 붙인 회사들도 십중팔구 모른다. 10년 전 그 유통사처럼.
국내 공유기는 태생부터 헤더를 손대는 물건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공평하다. 공유기가 지나가는 패킷을 고치는 건 중국산 저가 기기의 전유물이 아니다. 국내 IP 공유기는 출발부터 그런 물건이었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ADSL이 깔리던 시절에 통신사는 회선 하나에 PC 한 대를 전제로 약관을 걸었다. 그래서 그때 IP 공유기의 핵심 기능은 사실상 "한 대인 척하기"였다. MAC 주소 클로닝, TTL 값 조작. 통신사의 공유기 탐지를 어떻게 우회하는지가 제품 상세 페이지의 셀링 포인트였다.
내가 RG1000을 샀던 게 그 무렵이다. 국내에 공유기 만드는 신생 업체가 몇 군데 생기던 때였고, 애니게이트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니까 "공유기가 통신 내용을 고쳐도 된다"는 감각은 이 제품군에 처음부터 있었다. 목적이 통신사 회피에서 캐싱으로, 광고 삽입으로, 그리고 원격 관리로 바뀌었을 뿐이다. BR834가 User-Agent를 갈아버린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바뀐 건 감각이 아니라 조건이다. 그 시절엔 트래픽이 전부 평문 HTTP였다. 중간 장비가 마음만 먹으면 편집할 수 있는 문서였다. 지금은 대부분 HTTPS라 내용을 못 건드린다. 그래서 중간 장비가 할 수 있는 일이 내용을 고치는 것에서 자기가 직접 밖으로 나가 명령을 받아오는 것으로 옮겨간 거다. 35초마다 도메인을 두드리는 게 그 모습이다.
신뢰 경계가 엔드포인트에서 네트워크 장비 자체로 내려왔다.
애니게이트는 없어졌고 ipTIME은 남았다
내가 쓰던 애니게이트는 사라졌다. 다나와에는 제조사가 애니게이트이앤씨로, 11n 시리즈 출시 기사에는 에이엘테크로 나온다. 중간에 손이 바뀐 모양이다.
기억으로는 애니게이트 쪽이 ipTIME보다 물건이 나았다. 그럴 만하다. Flash 2MB 시절엔 개발사 실력이 제품에 그대로 드러났다. 펌웨어 전체가 2MB 안에 들어가야 했으니까 — 지금 기준으로는 아이콘 몇 개 크기다. 기능 하나를 넣으려면 뭘 빼야 했고, 같은 리얼텍 SDK를 받아도 그 안에서 뭘 남기고 얼마나 안 죽게 돌리는지가 회사마다 갈렸다.
그 격차가 사라진 이유도 명확하다. 브로드컴, 리얼텍, 미디어텍이 레퍼런스 디자인을 통째로 뿌리기 시작하면서 회로를 그대로 찍고 SDK를 얹으면 공유기가 나오는 시대가 됐다. 지금 AX3000SE는 Flash가 128MB다. 64배다. 넣고 싶은 걸 다 넣고도 남는다.
기술 격차가 사라지니 남는 승부처는 가격과 유통과 사후 지원이었고, 거기서 EFM네트웍스가 이겼다. 어디서나 살 수 있고, 고장 나면 바꿔주고, 몇 년 지난 모델에도 펌웨어가 올라온다.
좋은 물건 만들던 회사가 없어지고 무난한 회사가 남은 건 아쉽다. 그런데 이번 뉴스를 보고 나니 그 "무난함"의 값을 다시 매기게 된다.
Zbtlink는 문제가 공개되자 펌웨어를 홈페이지에서 지웠다. 10년 전 그 유통사는 전화한 사람에게만 수정본을 보냈다. 두 경우 다, 고쳐진 펌웨어가 있느냐와 그게 사용자에게 도달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였다.
공유기는 한 번 설치하면 아무도 다시 안 쳐다보는 기기다. 벽에 붙어서 10년을 돈다. 그 10년 동안 펌웨어를 올려줄 회사가 남아 있느냐가, 무선 규격 세대보다 훨씬 중요한 스펙이다. 이건 박스에 안 적혀 있고 다나와 스펙표에도 없다.
애초에 그 스펙표는 15년 된 제품의 유선 속도를 틀리게 적고 있었다.
산 다음에 30분이면 확인된다
기기 신뢰성은 사기 전에 확인할 방법이 없다. 벌른체크가 21종을 뜯어보기 전까지 아무도 몰랐던 것처럼, 밖에서 보이는 정보로는 안 나온다. 그러면 남는 건 산 다음에 직접 보는 것뿐이다.
볼 건 두 가지다. 지나가는 걸 손대는지, 그리고 혼자 밖으로 나가는지.
헤더는 반드시 평문 HTTP로 봐야 한다
이게 제일 중요한 함정이다. HTTPS는 중간 장비가 내용을 못 고친다. 그게 HTTPS의 존재 이유다. 그러니 HTTPS로 테스트하면 헤더를 주무르는 공유기도 깨끗하게 나온다.
10년 전 BR834 건이 하필 로그인 직전 단계에서만 터졌던 것도 같은 이유다. 그 구간이 아직 평문이었다. 로그인 이후는 멀쩡했다.
curl -s http://httpbin.org/headers
http다. https가 아니다. 이걸 두 번 찍어서 비교한다 — 새 공유기를 거친 상태 한 번, 회선에 직결한 상태 한 번.
User-Agent가 다른 값으로 바뀌어 있으면 재작성이다Accept-Encoding이 사라져 있으면 본문을 건드리려고 압축을 끈 거다Via,X-Forwarded-For,X-Requested-With같은 게 새로 붙어 있으면 중간에 프록시가 있다는 뜻이다
브라우저의 User-Agent는 curl과 값이 다르니, 평문 HTTP로 헤더를 보여주는 페이지를 브라우저로도 한 번 열어봐야 정확하다. 실제 피해는 브라우저 쪽에서 나기 때문이다.
아웃바운드는 공유기 바깥에서 떠야 보인다
공유기가 스스로 만드는 트래픽은 그 공유기 안쪽 PC에서는 안 잡힌다. WAN 쪽에서 봐야 한다. 새 공유기를 기존 라우터 뒤에 물리고, 기존 라우터 쪽에 PC를 하나 붙인 다음:
sudo tcpdump -n -i <인터페이스> host <새공유기_WAN_IP> and not port 80 and not port 443
웹 트래픽을 빼고 보는 이유는, 남는 게 곧 기기 자신이 만드는 통신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봐야 할 건 목적지보다 주기다.
정상적인 기기도 밖으로 나간다. NTP로 시간을 맞추고, 펌웨어 업데이트를 확인하고, DDNS를 갱신한다. 그런데 그건 부팅할 때 한 번이거나 하루에 한 번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기기는 35초였다. 수십 초 주기로 같은 곳을 두드리는 건 시간 동기화가 아니라 명령을 기다리는 모양이다.
DNS만 따로 봐도 대개 드러난다. 공유기가 어떤 도메인을 반복해서 묻는지 보면 된다.
sudo tcpdump -n -i <인터페이스> port 53 and host <새공유기_WAN_IP>
30분이면 충분하다. 주기적인 통신은 주기적이라서 30분 안에 반드시 여러 번 나온다.
아직 못 정한 것
이번에 확인한 건 세 가지다.
첫째, 상품 페이지 스펙은 출처가 아니다. RG5500N의 유선 속도를 확인하는 데 필요했던 건 판매 페이지가 아니라 칩셋 이름이었다. 살 때 진짜로 봐야 할 항목은 어느 SoC가 들어갔는지다.
둘째, 유선은 13년째 기가비트다. 무선 규격 이름은 계속 바뀌지만 실제로 병목이 되는 자리는 잘 안 움직인다. 오래 쓸 거면 2.5GbE가 있는 쪽으로 가는 게 맞다.
셋째, 펌웨어가 존재하는 것과 도달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이게 결국 브랜드를 고르는 기준이 된다.
공유기는 아직 안 샀다. 도착하면 랜선 꽂기 전에 위의 두 가지부터 돌릴 생각이다. 10년 전엔 사용자가 "접속이 안 된다"고 알려준 다음에야 확인했다. 그 순서를 바꾸는 데 필요한 게 30분이면, 안 할 이유가 없다.
그 결과는 따로 남긴다. 아무것도 안 나오는 게 정상이고, 그러면 그 글은 짧을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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