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준 선택지, 초5 아들은 어떻게 골랐을까?
열한 살이 AI가 준 선택지를 읽고 하나를 짚는다. 이건 잘 굴러가는 걸까.
1편을 쓰는 동안 아들이 입력한 열 문장을 계속 들여다봤는데, 옆에서 볼 때 제일 마음이 놓였던 장면이 그거였다. AI가 장르 여섯 개나 전투 유형 네 개를 뿌리면 아들은 읽고 하나를 짚었다. 읽고 판단하고 있으니 잘 굴러가는 중이라고 봤다.
그래서 선택지가 온 턴만 따로 떼어놓고 아들이 어떻게 답했는지 표시를 해봤다. 대응은 한 가지가 아니라 세 가지였다. 완성된 게임을 켜서 세 가지를 하나씩 대봤더니, 게임에 남아 있는 건 아들이 제일 정확하게 답한 쪽이 아니었다.
아들이 만든 게임은 여기 있다. code-blade-hospital.pages.dev
이 글은 1편에 이어지는 두 번째 편이다. 아들이 AI 앞에서 한 판단을 다룬다.

AI는 매 턴 두 개를 준다
대화를 다시 읽으면서 알아챈 게 있다. AI가 턴마다 화면에 올리는 게 두 종류다.
하나는 선택지다. 앞으로 정할 것의 목록이고, 번호가 붙어서 온다. 장르 여섯 개, 전투 유형 네 개, 주인공 타입 네 개, 시점 세 개, 적 정체 세 개, 배경 세 개. 짧은 대화 안에서 아들은 이 목록을 여섯 번 받았다.
다른 하나는 요약이다. 지금까지 정해진 것의 목록이고, 현재 기획은 이렇다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확정된 항목을 늘어놓는다. 1편에서 아들이 대화를 계속한 이유 세 개를 적었는데 그중 하나가 이 요약이었다. 목록이 길어지는 걸 보면서 게임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감각을 얻었다. 코드는 한 줄도 없는데도 그랬다.
두 목록이 보는 방향이 반대다. 선택지는 앞을 보고 요약은 뒤를 본다. 그리고 아들이 이 대화에서 한 판단은 전부 둘 중 하나에 대한 반응이다. 앞 목록에 답하거나, 뒤 목록을 읽고 되돌아가거나.
여기까지 보고 나서 대화를 다시 셌다.
아들이 선택지에 대응한 세 가지 방법
아래 인용은 전부 원문 그대로다. 오타와 띄어쓰기를 고치지 않았다. 다듬지 않은 원문이라는 걸 보여주는 게 인용의 목적이고 그 외에 다른 뜻은 없다.
네 번째 턴은 13시 57분이다. AI 가 전투 유형 네 개를 제시했는데 아들은 애니메이션 같은 기술로 싸운는 개임 이라고 썼다. 목록을 통째로 버리고 자기 문장을 쓴 것이다. 다섯 번째는 13시 58분, 주인공 타입 네 개에 4 라고 번호 하나만 찍었다. 여섯 번째도 같은 분, 시점 세 개에 3d 라고 단어 하나만 썼다.
일곱 번째가 다르다. AI 가 확정된 네 개를 요약하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려 하자 다른건 좋은데 1인 칭 시점으로 하자 라고 썼다. 확정된 항목으로 되돌아가 한 축만 교체한 것이다. 아홉 번째는 14시, 적 정체 세 개에 사람들씨리 싸우는 이라고 또 목록을 버리고 자기 문장을 썼다.
세 번째와 여덟 번째 턴은 표에 안 넣었다. 아들이 쓴 말이 그 목록 안에 있던 항목과 겹치는지 지금 내가 가진 기록으로는 못 가른다. 열 번째 턴의 총은 빼자도 뺐다. 그건 목록에 답한 게 아니라 지우라는 지시고 다른 축이라서 마지막 편에서 다룬다.
두 번은 선택지를 통째로 버렸다. 네 번째 턴에서 AI가 내놓은 전투 유형 네 개는 하나도 안 쓰였고, 아홉 번째 턴의 적 정체 세 개도 그랬다. 두 번은 번호 하나와 단어 하나로 답했다. 다 합쳐서 세 글자다. 한 번은 앞 목록을 무시하고 뒤 목록으로 갔다.
그리고 버린 두 번이 게임의 정체성이 됐다. 능력으로 싸우는 전투와 사람끼리 붙는 판, 이 두 개를 빼면 지금 돌아가는 저 게임은 다른 게임이다. 목록에서 고른 것들은 그 위에 얹힌 조건 쪽이다.
아들이 매 턴 던진 질문은 하나였다
네 턴을 순서대로 놓으니 아들이 반복한 게 뭔지 보였다. 매번 같은 질문 하나다. 이 중에 내가 원하는 게 있나.
있으면 번호만 쳤다. 설명을 붙이지 않았고 예의도 안 차렸다. 없으면 목록을 무시하고 자기 문장을 썼다. 열한 살이 이걸 네 번 하는 동안 나는 옆에서 아무 말도 안 했다.
아들은 자기가 그러고 있는 줄 몰랐다. 그래서 더 볼 만하다. 이건 배워서 하는 게 아니고, 원하는 게 자기 안에 분명히 있을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행동이다. 반대로 뭘 원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저 질문 자체가 안 생긴다. 목록이 오면 그중에서 제일 그럴듯한 걸 고르게 되고, 그건 고르는 게 아니라 받는 것이다.
아들은 고르는 걸 재미있어했다. 1편에 적은 관측이다. 그런데 재미있어하면서도 두 번은 버렸다. 재미있는 걸 버리는 판단이 나온 자리가 흥미보다 원함이 더 셌던 자리다.
이게 생각이 일어나려면 비교할 게 눈앞에 있어야 한다는 것과 이어진다. 백지에서 뭘 꺼내는 건 어른도 잘 못한다. 목록이 놓이면 그걸 자기 안의 것과 대보게 되고, 대보는 그 순간이 생각이다. 그리고 대봤을 때 나오는 답은 두 가지다. 안에 있다도 답이고 안에 없다도 답이다. 뒤쪽 답을 못 내면 목록은 사고를 도와주는 도구가 아니라 사고가 멈추는 자리가 된다.
선택지는 아들 사고의 경계가 아니다
여섯 개가 나란히 오면 여섯 개가 전부처럼 보인다. 목록의 생김새가 그렇게 생겼다. 번호가 붙어 있고 끝이 닫혀 있고 각 항목에 짧은 설명이 달려 있으니 완결된 표처럼 읽힌다.
그런데 그 목록은 아들이 만들 수 있는 게임의 목록이 아니다. AI가 흔히 본 게임의 목록이다. 경계가 아들 쪽에 있는 게 아니라 저쪽에 있다.
아이에게는 이게 어른보다 위험하다. 아이는 객관식을 매일 받는다. 학교 시험지에서 정답은 반드시 보기 안에 있고, 없는 것 같으면 자기가 틀린 것이다. 그 규칙을 몇 년 동안 익힌다. 그리고 AI 화면에 뜨는 목록은 시험지 보기와 생김새가 거의 같다.
시험지는 정답을 안에 넣어놓는다는 약속을 지킨다. AI는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 같은 모양인데 약속이 다르고, 그 차이가 화면 어디에도 안 적혀 있다.
이번에 아들이 두 번 밖으로 나간 건 내가 시켜서가 아니다. 만들고 싶은 게 뚜렷했으니 목록에 없다는 걸 그냥 알았다. 그러니까 지금 있는 건 우연히 잘 나온 판단이고, 다음에도 나올지는 모른다. 붙여야 할 건 이 판단에 이름을 달아주는 일이다. 1편에 쓴 그대로 무슨 판단을 했는지 알려주고 왜 그게 필요한지까지 말해주는 방식으로 한다. 아까 네 개 다 안 쓰고 네 말로 썼지. 그게 잘한 거다. 그 목록은 답이 그 안에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열한 살이 알아들을 문장 세 개면 된다.
버리는 것과 고르는 것 사이에 하나가 더 있었다
현재 도시를 바탕으로 페허 도시 같은 거로
여덟 번째 턴이고 배경 세 개를 받은 다음이다. 위 표에서 뺐던 턴인데 따로 볼 값이 있다.
목록 안에 이 말이 있었는지는 내 기록으로 못 가른다. 그런데 문장의 모양은 그것과 상관없이 볼 수 있다. 바탕으로가 앞에 있고 같은 거로가 뒤에 있다. 뭔가를 발판으로 잡고 그 위에 조건을 얹는 형태다.
버리기도 아니고 고르기도 아니다. 목록에 있는 걸 출발점으로 쓰면서 방향은 자기 말로 튼 것이다. 그러면 아들이 한 대응은 세 가지가 아니라 네 가지가 된다.
이 턴을 표에 안 넣은 이유는 결과를 대볼 수가 없어서다. 배경이 최종적으로 무엇이 됐는지는 대화 기록이 끊긴 뒤 구간에 걸려 있고, 그러면 이 문장이 어디까지 도착했는지 말할 수 없다. 골격만 적어두고 넘어간다. 실제로는 이 골격이 제일 자주 쓰이는 형태일 텐데 이번 기록으로 그걸 증명할 수는 없다.
두 글자로는 시점이 안 정해졌다
여기서 최소 입력 쪽에 청구서가 왔다. 그리고 그게 바로 다음 턴에 왔다.
여섯 번째 턴에서 AI가 물어본 건 시점이었고, 아들이 답한 건 3d다. 차원과 시점은 다른 축이다. 3D인지 2D인지와 화면이 캐릭터 뒤에 붙는지 눈에 붙는지는 따로 정해야 하는 항목인데, 아들은 앞쪽 두 글자만 쳤다.
목록 세 개 안에 3d가 들어 있었는지는 내 기록으로 못 가른다. 확인되는 건 결과다. 그다음 턴에 AI가 올린 요약에는 시점이 정해진 것으로 적혀 있었고, 그건 아들이 원한 게 아니었다. 아들이 비워둔 축을 AI가 자기가 채운 것이다.
이게 최소 입력의 성질이라고 본다. 번호나 단어는 그 자리에서 효율적이고 대개 맞는 판단이다. 그런데 그 답이 질문의 축과 어긋나 있으면 어긋난 채로 통과한다. AI가 되묻지 않기 때문이다.
1편에 아들이 오타를 그대로 써도 AI가 열 번 다 알아들었다고 썼다. 그건 맞는데 이 턴을 보고 나서 한 줄을 붙여야 한다는 걸 알았다. AI는 오타를 다 알아들었고, 축이 어긋난 답도 알아들은 것처럼 처리했다. 못 알아들었을 때 안 물어보는 게 아니라 못 알아들었다는 표시 자체를 안 낸다.
사람이면 여기서 되묻는다. 3D는 알겠는데 화면은 눈에 붙일까 뒤에 붙일까. 그 한마디가 없으니 비어 있는 축은 조용히 채워지고, 채워진 값은 요약 목록에 확정된 것처럼 적힌다. 아들에게 알려줄 게 여기 하나 더 있다. 네가 빼먹은 걸 저쪽은 알려주지 않고 자기가 정한다는 것.
그리고 그 다음 문장이 이 대화에서 제일 볼 만한 문장이다.
이미 넘어간 결정으로 되돌아갔다
다른건 좋은데 1인 칭 시점으로 하자
일곱 번째 턴이다. 이 문장이 나온 시점을 보면 AI는 이미 시점 이야기를 끝냈고 배경을 묻고 있었다. 확정된 네 개를 요약해서 보여준 다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 상태다.
아들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위로 갔다.
문장을 두 조각으로 나눠보면 아들이 한 게 뭔지 보인다. 다른건 좋은데가 앞에 있고 1인 칭 시점으로 하자가 뒤에 있다. 앞 조각이 나머지 셋을 명시적으로 살려두고, 뒤 조각이 한 축만 갈아낀다. 열한 살이 쓴 여덟 글자짜리 앞 조각이 재작업 범위를 정한 것이다.
이걸 다르게 할 수도 있었다. 이건 내가 생각한 게 아니라고 하고 다시 만들어달라고 하는 방법이 있다. 실제로 어른들이 그렇게 한다. 나도 회사에서 그렇게 한다. 1편에 적은 그 사람, 같은 걸 세 번 만들게 한 그 사람이 그걸 한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나머지 셋도 같이 흔들린다. AI는 전부 다시 만들라는 요청을 받으면 정말 전부 다시 만들고, 그 과정에서 잘 정해져 있던 것도 다른 값으로 바뀐다. 그러면 어디가 바뀌었는지 찾는 일이 새로 생긴다.
아들은 그 일을 안 만들었다. 여덟 글자로 세 개를 잠가놓고 하나만 열었다.
이것도 내가 시킨 게 아니다. 1편에서 두 번째 턴은 내가 세웠다고 썼는데, 이 턴은 아니다.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아들이 원한 게 1인칭이었고 나머지는 마음에 들었으니 그렇게 쓴 것이다. 어른이 이걸 못 하는 이유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게 여기서 보인다. 어른은 자기가 뭘 원했는지를 이미 잊었거나, 결과가 그럴듯해서 원래 원한 걸 다시 안 꺼낸다.
되돌아갈 수 있었던 건 요약을 읽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위로 갈 수 있었던 건 위에 갈 데가 있었기 때문이다. AI가 매 턴 뿌린 그 요약이다.
정해진 게 목록으로 눈앞에 있으니 아들은 그걸 자기 머릿속과 대볼 수 있었다. 시점 항목에 자기가 원한 게 아닌 값이 적혀 있는 걸 봤고, 그래서 그 항목만 짚었다. 요약이 없었으면 아들은 자기가 뭘 확정했는지 기억으로만 갖고 있어야 했고, 열한 살의 기억으로 네 항목을 붙들고 있기는 무리다.
그러니까 그 요약이 이 대화의 검증 지점이었다. 진행 표시처럼 생겼는데 실은 대조표였다.
이 목록을 AI가 만들었다는 점도 같이 봐야 한다. 아들이 말한 항목과 AI가 알아서 채운 항목이 같은 서식으로 나란히 적힌다. 시점처럼 아들이 말한 적 없는 값도 확정된 것 자리에 들어가고, 글자 모양으로는 둘이 구별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목록은 대조표이면서 동시에 대조가 필요한 대상이다. 아들이 일곱 번째 턴에서 한 일이 뒤쪽이다. 목록을 읽고 목록이 틀렸다고 한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읽힌 게 한 번뿐이라는 것이다. 1편 마지막에 그때는 아무도 그 요약을 대조용으로 안 봤다고 썼는데, 정확히 말하면 일곱 번째 턴 딱 한 번 그렇게 읽혔고 나머지는 진행 표시로 읽혔다. 목록이 길어지는 걸 보는 재미가 있었고, 길어지는 걸 보는 것과 한 줄씩 맞춰보는 것은 다른 행동이다.
왜 시점은 잡혔고 다른 건 안 잡혔나. 이 질문이 남았고 나는 답이 하나라고 본다. 시점은 아들 머릿속에 그림이 있는 항목이었다. 1인칭이 뭔지 아들은 안다. 자기가 해본 게임이 그렇게 생겼으니까. 그림이 있으면 요약에 적힌 글자와 대볼 수 있다.
다섯 번째 턴에서 번호 4로 고른 항목은 그림이 흐렸다. 목록에서 읽고 좋아 보여서 골랐고, 고른 다음에는 그게 아들의 그림이 되기 전에 화면 위로 올라갔다.
남은 걸 대보니 순서가 반대였다
게임을 켜서 다섯 턴이 어디까지 도착했는지 봤다.
버린 쪽이 남아 있었다. 사람들씨리 싸우는이라고 쓴 그 문장은 게임 안에서 적이 사람 형태를 갖는 것으로 도착했다. 머리와 머리카락과 바이저와 부츠와 검이 다 있다. 브리핑 화면에 뜨는 문구도 사람끼리 붙는 판을 가리킨다. 애니메이션 같은 기술로 싸운는 개임도 그렇다. 완성된 게임의 전투는 능력을 골라 쓰는 쪽이고, 기술로 싸우는 게임이라는 요구가 게임의 중심에 그대로 있다.
되돌아간 쪽도 남아 있었다. 1인칭 시점은 그대로 됐다. 카메라가 눈에 붙어 있고 조준점이 화면 가운데 있고 무기가 카메라에 딸려 있다. 여덟 글자로 잠가둔 나머지 셋도 안 흔들렸다.
고른 쪽이 없었다. 다섯 번째 턴에서 아들이 4로 고른 주인공은 검과 창과 대검을 전투 중에 바꿔 쓰는 쪽이었다. 완성된 게임에는 무기가 하나뿐이고 바꾸는 기능이 없다. 이건 대화 기록 안에서 확인되는 항목이라 그냥 없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여섯 번째 턴의 3d는 두 번 걸렸다. 요약 단계에서 시점이 어긋난 게 한 번이고, 그걸 고친 다음에도 처음 만들어진 게임이 2D로 나온 게 한 번이다. 1편에 쓴 그 장면이다. 목적을 분명하게 다시 말한 다음에야 3D로 왔다.
능력 종류가 일곱 개까지 늘어난 것과 배경이 병원 계열이 된 것은 여기서 세지 않았다. 대화 기록이 끊긴 지점 뒤에 정해진 것들이고, 그 구간을 내가 갖고 있지 않다. 아들이 그때 동의했을 수도 있다. 그건 마지막 편에서 다룬다.
번호는 아이 쪽에 아무것도 안 남긴다
자기 문장으로 말한 것과 되돌아가서 고친 것은 코드까지 갔고, 번호와 단어로 답한 것은 하나가 사라지고 하나가 두 번 어긋났다. 아들이 더 신경 써서 쓴 쪽이 살아남은 게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짧고 정확하게 답한 쪽이 안 남았다.
살아남은 문장들은 잘 쓴 문장도 아니다. 사람들씨리 싸우는은 오타가 있고 조사가 어긋나고 문장이 끝나지도 않았다. 애니메이션 같은 기술로 싸운는 개임도 마찬가지다. 프롬프트 강좌 기준으로 채점하면 둘 다 낮은 점수를 받는다. 4는 반대로 흠이 하나도 없다. 오타도 없고 짧고 정확하다. 그런데 코드까지 간 건 앞쪽이다. 문장을 얼마나 잘 썼느냐가 아니라 그 안에 자기 요구가 들어 있느냐가 갈랐다.
이유가 두 개 있다고 본다.
하나는 기록이다. 4는 그 자체로 요구가 아니다. 요구의 내용은 AI가 보여준 목록 안에 있었고, 그 목록은 다음 턴부터 화면 위로 올라가서 안 보인다. 아들의 입력창에 남은 건 숫자 하나다. 나중에 완성된 게임과 맞춰보려고 대화를 뒤지면 4라는 글자가 나오는데, 그걸로는 뭘 골랐는지 알 수 없어서 위로 더 올라가야 한다. 반면 사람들씨리 싸우는은 그 자체가 요구다. 문장이 남아 있으면 대조표가 이미 손에 있는 것이다.
AI 요약에는 적혀 있었다는 반론이 여기서 나온다. 맞다. AI는 확정된 항목을 매 턴 문장으로 풀어서 보여줬다. 그러니까 기록은 있었다. 다만 그건 AI가 쓴 문장이고 아들이 쓴 문장이 아니다. 아들 눈에 그건 자기 결정의 목록이 아니라 진행 상황이었고, 그래서 대조표로 안 읽혔다. 실제로 대조된 건 아들이 그림을 갖고 있던 시점 항목 하나뿐이다.
다른 하나는 기억이다. 아들은 자기가 쓴 문장은 기억했고 자기가 누른 번호는 기억하지 못했다. 게임을 켜고 한참 놀면서도 무기가 안 바뀌는 걸 못 잡은 이유가 이거다. 잊어버린 게 아니라 애초에 남긴 게 없었다.
1편에서 3d 두 글자가 머릿속 그림을 다 못 담았다고 썼는데, 4는 층이 다른 문제다. 3d는 뜻이 덜 넘어간 경우라서 화면을 보면 잡힌다. 2D가 나오면 눈에 보인다. 4는 뜻은 정확히 넘어갔는데 나중에 맞춰볼 기준이 아들 쪽에 안 남은 경우다. 이건 화면을 봐도 안 잡힌다. 무기가 하나인 게임도 화면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최소 입력이 나쁜 판단이었다는 결론이 아니다. 다섯 번째 턴에서 4라고 친 건 그 자리에서 맞는 판단이었다. 값은 그 자리에서 안 치르고 나중에 치른다.
다음엔 세 개를 붙일 것
이번 대화에서 나온 걸 아들에게 다시 붙이려면 세 개가 필요하다고 봤다.
번호 뒤에 자기 말로 한 줄. 번호로 답해도 되는데, 엔터 치기 전에 한 줄을 붙이게 하는 것이다.
4번, 검하고 창하고 대검을 싸우는 중에 바꿔 쓰는 거
이유도 같이 말해줄 것이다. 저 목록은 조금 뒤에 위로 올라가서 안 보이고, 네가 뭘 골랐는지는 아무 데도 안 적힌다. 다 만들어진 다음에 네가 원한 게 들어갔는지 보려면 네 말로 적힌 게 있어야 한다. 이러면 AI 쪽에도 요구가 한 번 더 명시되긴 하는데 그건 부수 효과고, 주 목적은 대조할 목록이 아들 손에 남는 것이다.
다른건 좋고 다음에 X만. 아들이 일곱 번째 턴에서 쓴 문장 골격을 이름 붙여서 돌려주는 것이다. 아들은 이미 한 번 했으니 새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알아보게 하는 일이다. 고칠 게 생겼을 때 다시 만들어달라고 하지 말고 살릴 것을 먼저 말하고 바꿀 것을 하나만 대는 것. 이게 회사에서 결과를 가르는 그 습관과 같은 것이라는 것까지 말해줄 생각이다.
요약이 올 때 한 번 읽기. 제일 어려운 쪽이다. 화면에 뜨는 그 목록은 진행 표시처럼 생겼고 열한 살에게는 게임이 만들어지는 증거로 보인다. 그걸 대조표로 보게 하려면 목록이 늘어날 때마다 한 항목씩 자기 그림과 맞춰보게 해야 하는데, 재미있게 진행되는 중에 멈춰서 그걸 하는 건 어른도 안 한다. 1편 마지막에 다음에 붙일 건 코딩이 아니라 정한 걸 아들이 자기 손으로 적어두게 하는 일이라고 썼는데, 그 적어두기가 시작되는 자리가 여기다. 따로 공책을 꺼낼 필요도 없다. 번호 뒤에 한 줄이면 대화창 안에 그대로 쌓인다.
이 사고는 어디에 대응하는가
회사 말로 옮기면 세 가지가 각각 어디에 붙는지 보인다.
목록 밖으로 나가는 것. 누가 방안 세 개를 표로 정리해서 가져왔을 때, 그 세 개 중에서 고르는 일과 세 개가 문제 전체를 덮는지 보는 일은 다른 일이다. 정리된 표를 받으면 대부분 표 안에서 고른다. 표를 만든 사람이 이미 생각을 해뒀고 항목마다 장단점까지 적혀 있으니 그 위에서 판단하는 게 자연스럽고 빠르다. 표 밖에 있는 걸 말하려면 표를 만든 사람의 수고를 무르는 셈이 되니까 부담도 있다. AI가 뿌리는 목록에는 그 부담조차 없는데도 사람들이 여전히 안에서 고르는 걸 보면, 부담이 문제가 아니라 목록이 놓이면 사고가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게 문제다.
한 축만 갈아끼우는 것. 회사에서 이걸 못 하면 비용이 바로 나온다. 마음에 안 든다고 전부 다시 하라고 하면 잘 돼 있던 부분까지 새로 검토해야 한다. 살릴 것을 말하고 바꿀 것을 하나만 대는 사람은 같은 시간에 한 바퀴를 더 돈다. 열한 살이 여덟 글자로 한 게 이거다.
고른 걸 자기 말로 적어두는 것. 회의록과 요구서가 원래 그걸 하려고 있는 문서다. 3번 안으로 합니다만 적어두면 몇 주 뒤에 아무 소용이 없다. 3번이 뭐였는지는 그때 자료를 다시 찾아야 하고, 대개 안 찾는다.
아들은 앞의 둘을 이번에 했고 세 번째를 한 번도 안 했다. 나는 회사에서 세 번째를 매일 놓친다. 열한 살이 앞의 둘을 이미 하고 있다는 게 이번에 얻은 것이고, 세 번째는 이유를 붙여서 알려줘야 하는 부분이다.
다음 편은 마지막이다. 대화에서 정한 목록과 완성된 게임을 한 줄씩 맞춰본 기록을 쓴다. 무기 전환이 어디서 사라졌는지, 그리고 이걸 아들이 스스로 잡게 하려면 뭘 쥐여줘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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